11 골번 양공장 초기 정착기와 자기주도적 목표설정

호주에 입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아직 호주라는 곳이 낯설고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나는 이러한 적응기 동안 필연적으로 시간이 소모되는 것이 낭비스럽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미리 정보를 검색하고 골번이라는 시골에 있는 양공장에 바로 취업하였다. 이곳은 세컨드 비자를 취득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장이기에 호주 생활의 미래를 위한 준비 또한 할 수 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유효기간은 기본적으로 1년이다. 하지만 호주 정부에서 지원 지정한 농장 혹은 공장 등의 직군에서 88일 이상 종사할 경우 추가로 워킹홀리데이 세컨드 비자를 발급해준다. 이는 곧 나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라이프를 1년 연장하여 총 2년간 머무를 수 있다는 말이다. 보통 같은 워킹홀리데이로 입국한 친구들끼리 "너 지금 (비자) 퍼스트야? 세컨드야?" 하며 서로의 비자 상태 및 거주기간에 관하여 묻기도 한다.


1년이 길면 길지만, 호주에 적응하고 잠시 지내다 보면 시간은 물 흐르듯이 빠르게 흘러 나도 모르게 금세 지나간다. 그렇게 한참 호주에서 삶에 재미를 느끼고 있을 때쯤에는 이미 6개월이 지났고 남은 6개월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세컨드 비자를 취득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4개월(근무 일수 충족 및 서류 준비)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친구가 반년 정도 살고 나서 세컨드 비자 취득을 위해 조바심을 가지고 또 다시금 시간을 허비한다.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당연히 여유가 없고 결국 운이 좋지 못한 친구들은 비자가 만료되어 한국으로 강제로 귀국길에 올라야 한다.

적응기 3개월,
어영부영 일하면서 즐기다가 3개월,
세컨드 비자 준비하다가 날려버린 3개월,
비자 취득 포기 및 귀국 준비 2개월

이것은 정말 최악의 워킹홀리데이 케이스이다. 무엇하나 얻은 것도 없이 술 먹고 놀면서 말 그대로 넋 놓고 영양가 없는 자유를 만끽하다가 끝에는 강제 귀국한 친구들...
그런데 생각 외로 이런 친구들이 많고 이것이 현실이다.
이 글을 보는 친구들은 꼭 머릿속에 롤플레잉을 한 번씩 해보도록 하자


나는 호주 골번에 집도 구하지 못한 상태로 왔기 때문에 에이전시를 통해서 소개받은 집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이 집은 100년이 넘은 최악의 컨디션을 자랑하며 곧 무너질 것 같은 집이다. 방이 3개 있고 나는 제일 큰방을 3명이 함께 사용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 메트릭스가 모서리별로 놓여있고 그 매트릭스 반경 2m 정도가 나의 구역이다. 복도는 걸을 때마다 썩은 나무 꺼지는 소리 "삐걱삐걱" 나고, 화장실은 1개를 7명이 사용했다. 주방엔 바퀴벌레가... 내 인생에 최악의 집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컨디션에서 살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어...'라는 자기 최면을 걸고 빠른 탈출을 목표로 선택권 없는 골번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음날 점심 도시락

어느덧 골번의 양공장에서 일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호주 공장은 밥을 제공하지 않는 공장이 많다. 그리고 이 공장은 새벽에 출근해서 낮에 끝나기 때문에, 전날 저녁에 다음날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긴장을 하고 매일 밤 이른 잠을 청하였다. 상대적으로 출근차가 모자르기 때문에 여러명이서 약간의 기름값을 지불하고 출퇴근을 같이 한다. 이런 것을 "오일쉐어"라고 불린다. 물론 차주는 '갑'이 되고 쉐어하는 친구들은 '을'이 된다. '을'의 입장인 

내가 늦는 순간 나랑 같이 차를 타고 가는 친구들이 모두 늦기 때문에, 늦잠은 대인관계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일도 손에 익어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서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나는 외국인노동자가 된 기분이 든다. 호주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하였고 슬슬 골번에서의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항목을 작성해본다.

1. 가성비 좋은 자동차 구매하기 (삶의 질 개선 & 비용 절감)

2. 호주인 집으로 이사하기 (커뮤니케이션 & 환경 개선)

3. 외국인 친구들 많이 사귀기 (커뮤니케이션)


첫번째 목표부터 순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나는 계획을 만든다.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 여러 가지 마인드맵을 그려본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나의 재무설계와 적극적인 대인관계 형성을 하면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워킹홀리데이 친구들은 모두 똑같이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하지만 이 기간을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시간을 세이브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간에 편하게 한국인들끼리 뭉쳐서 으샤! 으샤! 하다 보면 너무도 즐겁지만, 뒤돌아보면 남는 것은 하나도 없고 시간은 시간대로 소모하고 나는 처음 그 자리에 아직도 서 있을 것이다.

목표를 못 이뤄도 좋다. 목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확연히 다르다. 나는 많은 표본을 실제로 봐왔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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